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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이유 없이

닫아 놓은 방은 방 안의 나를 두터이 보호한다. 그렇기에 닫힌 방 문을 열고 누군가를 들이는 일은 두려움을 동반한다. 하지만 열린 문 틈 사이 들어온 빛과 같은 새로움은 예기치 않은 설렘을 선사한다. 이런 사건이 벌어진 공간에서 우리는 서툰 감정들과 회의적인 시간을 나누고 서로에게 얄궂은 존재가 된다. 서로에 의해 괴로워하고 서로에 의해 안정되는 것이다. 그런 우리의 모습은 사랑스럽고 애처롭다. 일련의 여름과 같은 치열한 시간이 지나고 담담한 새로운 계절이 되면, 이해할 수 없던 타인으로부터 나를 읽게 된다. 한때 나를 묘사했던 말들은 낯설어지고 우리를 묘사하는 말들이 익숙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이유 없이도 같은 방향으로 함께 누워있을 수 있다. 시선이 같아지며 열어둔 방 문의 빛이 더 길어진다. 우리는 더 크고 좋은 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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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부터 셋이 함께 사용하게 된 원룸 작업실은 자연스레 세 영역으로 구획되었다. 

각자의 공간은 보이지 않는 경계를 통해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고, 차츰 작업실만의 

어떠한 질서와 규칙들이 생겨났다. 그렇게 한정된 공간을 두고 셋은 합리적인 공간을 

구축해 나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자의 영역 사이에서 생겨난 틈은 작업실에 

미세한 굴곡을 형성했다. 

     

생활의 대부분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우리의 작업들은 서로 최소한의 물리적 

거리만을 남겨두거나, 서로의 영역을 침범한 채 여기저기 자리하게 되었다. 공용 책상 위엔 

캔버스들이 차곡 쌓이게 되었고, 몇몇 수납장은 아예 베란다로 치워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만 했다. 냉장고 옆에 위치한 붙박이장은 온전한 가구의 용도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그저 명목상의 칸막이로 사용되고 있다. 

     

한정된 공간을 공유하면서, 세 작가는 ‘더 크고 좋은 방’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적으로 마주하는 실제 공간을 시작으로, 이를 대하는 개인(혹은 사회)의 관점, 공간의 

형태와 유기적인 성질 등을 각자의 시각에서 탐색해 보기로 하였다. 

     

우리 세대가 경험하는 공간 활용의 배경에는 대부분 필요 이상의 한정성과 불안정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는 실생활에서 마주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로서, 우리가 

‘공간’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더 나은 삶의 질을 향한 

예민한 상상력을 동반 한다는 점에서 현실 다음의 무엇을 바라보게 한다. 세 작가의 ‘더 

크고 좋은 방’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의 공통된 이상적 경험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점유의 고정된 의미로 점철되기보단, 열려있는 형태로서 새로이 공간을 

구축하고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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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by Agatha Kronberg. Proudly created with Wix.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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